공지사항

2010. 8. 22. 01:13
travel/korea judain

휴가 둘째날, 찜질방을 나와서 걷는 발걸음이 유쾌하고나. 영주역으로 향했다.
늦잠자서 부석사는 다음에 다시 오기로 하고, 새로운 곳으로! 그 곳 문경새재로!




사랑을 전하세요 ♬ 영주역입니다~ 오랜만에 듣는 즐거운 멜로디!
문경새재로 갈 수 있는 점촌역으로 발권을 하고, 역 맞은 편에 있는 우동집에서 떡만두국을 먹었다.


기차 안에서는 얼마 전부터 사무실에 앉아 계속 들으며 힘을 받았던 부가킹스의 '여행길'(feat.윤도현)을 실감나게 들었다.
그리고 점촌역 도착! 명예역장 쌍둥이들이 있는 너무 귀여운 역이었다.





역을 나와 물어물어 문경가는 버스 정류소를 찾았다. 점촌역에서 직진하다가 미스터피자를 끼고 돌아 보이는 농협 앞 정류소. 영주역 출발할 때 샀던 주전부리 카라멜을 하나씩 까먹으며 버스 앞에 '새재'라고 적힌 버스를 기다렸다. 이십 여분을 기다려 버스를 타고 문경새재로 고고! 비가 흩뿌리다 그쳤다 했지만 사뿐사뿐 길이 난대로 따라 올라갔다.






드디어 입구. 하하하.



요 흙길을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많아 나도 냉큼 신발을 벗어던지고 걸었다. 비 때문에 진창도 있었지만 요래조래 살살 피해가면서 폭신폭신한 길을 걸으며 계곡 물소리를 들으니 천국으로 가는 길이 따로 없구나 싶었다. 문경새재는 명품 산책로고나야!




낄낄 조곡폭포 앞에서 인증 셀카!
그리고 숨이 넘어가기 전마다 하나씩 입안에 넣어 생명 게이지를 올렸던 초코칩쿠키 인증.


그리하여, 제2관문에서 멈춰야 했지만 (아 거기까지가 딱이었는데!!!) 괜한 독이 올라 '갈 때까지 가보자' 하고 사오십분을 더 걸었다. 제3관문까지 오르는 사람은 많지 않아 적적하게 혼자 고행길에 오른 듯 했지만, 그래도 제3관문을 찍고 보니  뭔가 해냈다는 뿌듯함과 함께, 미친짓이란 후회와 함께, 휴게소에서 계곡물소리와 산새소리를 들으며 막걸리를 먹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았다.


산책길이 아니라 이제 등산길이 되어버린 문경새재 과거길. 다시 하산. 후들거리는 다리가 빠른 템포로 골라듣는 음악과 함께 흐늘흐늘 움직였다. 제2관문까지 내려가는 길에 마주한 올라오는 사람들은 모두 한결같이 '제3관문까지 얼마나 더 가야 하는가'를 물었다. 혼자 올라오던 어떤 젊은 남자도 같은 질문을 했다. "당신은 삼십분은 더 올라가야 하지만, 지금 나와 함께 내려가서 막걸리를 먹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되묻고 싶었다. 하하하.


올라갈 땐 그냥 지나쳤던 KBS 촬영장을 지나왔는데, 마침 성균관스캔들 촬영이 있어 밴도 올라오고 촬영차도 올라왔다. 가까이 가서 구경은 하지 않고 멀리서 지나다가 혼자 빠져나와 쉬고 있는 보조출연자의 뒷모습을 보았다. 인생의 무게가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다 내려와서부턴 다음 일정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당장은 배가 고팠다. 도로 가판에서 삼천원에 다섯개 정도 주는 찐옥수수를 사가지고 버스 정류소에서 갉아먹었다. 미친듯이 먹었다. 버스를 타고도 맨 뒷자리에서 계속 먹었다. 문경 터미널 안에서 결국 마지막 다섯번째 옥수수를 끝냈다. 이제는?



문경 시내로 나가서 밥을 먹고 씻고 쉴지, 다른 도시로 이동을 할지. 고민은 잠깐. 아픈 다리와 온 몸에 벤 땀내를 가지곤 더 이상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곧장 있는 서울행 버스를 발권했다. 10800원. 종로나 신촌에서 술먹고 밤에 택시타고 들어갈 때보다 적은 요금으로 문경과 서울을 오가는구나. 새로운 발견이었다.



서울로 가는 버스에선 다리가 아파서 잠도 제대로 안 왔다. 끙끙. 앓았던 듯도 하다.
문득 고향 집이 그리웠다. 아직 남은 3일의 휴가는 엄마 밥을 먹자. 결심. 문경새재를 제2관문 까지만 갔어도 여행은 계속되었을 것을. 집에 와서 짐을 내려놓고 옷만 대충 갈아입고 다시 심야버스를 타러 나왔다. 거제도로 향했다. 터미널에서 아빠한테 전화를 걸었더니 좋아라 하셨다.


+

경북-서울-경남. 이틀동안 무리하기도 했지. 거제도 집에 와서 씻고 보니 입술이 터졌다. 독하게 터졌다. 엄마는 회사 일이 힘드는가보다 하셨다. 나는 혼자 떠난 여행을 말하지 않았다.


토요일에는 아빠랑 장어에 소주 한잔을 기울이며 무한도전을 보며 웃었다. 일요일에는 회를 먹으며 또 아빠와 소주를 나눠마셨다. 월요일에는 엄마랑 우체국에 들렀다가 서울가는 버스를 타러 가면서 수다를 떨었다. 여태 공부시켜줬으니 이제 니도 선물도 사오고 용돈도 좀 주고 해야되지 않겠나 하셨다. 그래서 '나도 그럼 엄마를 공부시켜 주겠노라' 했다. 이왕이면 서울대를 갔으면 좋겠다고도 말했다. 내 헛소리에 엄마가 웃어서 좋았다.


5일간의 휴가. 문경새재 과거길에서 엄마 아빠와 함께 살던 진짜 '과거'로 이어진 여행. 참 알차게 보냈다. 혼자 걷는 길의 즐거움, 새로운 곳으로 가는 설레임 그리고 더 튼실해진 다리와 터진 입술의 영광, 아빠 품, 엄마 품, 어릴 적 친구와의 수다, 집에 남아있는 고등학교때 보던 소설책을 다시 읽으며 오래전을 추억하는 시간으로 가득 채워진 알찬! 여행! 대단하진 않지만, 그래도 특별한 휴가로 기억남을 것 같다. 좋다. 좋다.

사진은 니콘 d40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