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2014. 5. 5. 23:28
book judain

천양희 산문집 <나는 울지 않는 바람이다>

집에 돌아와 읽은 책을 갈무리하려고 다시 폈다.

 

"언젠가부터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영혼의 따뜻했던 날들이며, 모든 것을 이기던 사랑이며, 시가 베푸는 낙이며, 나의 지음들이며... 그러나 그 잃어버린 것들에 기대어 오늘을 살았다. (중략) 깊은 숨을 한번 내쉬고 보면, 그 말할 수 없어 침묵할 것들이 내 영혼을 채워주었던 것 같다. p.31

 

내가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희생이, 내가 최고라고 생각했던 긍정이 다 최선은 아니며 최고는 아니었겠지. 좋은 희생도 없고 나쁜 긍정도 없다는 것을 실패를 통해서 알게 된다. 자기실현이 된 상태라고 할지라도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성취할 때에야 비로소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 게다. p.87

 

혼자일 때 내가 나의 허위를 뚫지 못한다면 거짓의 모퉁이를 돌아 진실의 길로 접어들 수 없다. p.121

 

나는 가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두려울 때, 무엇을 보게 될까 두려울 때 무반주 첼로를 듣는다. 잊히지 않는 일이나 비수같이 꽂히던 말이 생각날 때 반주 없는 곡을 듣게 된다. 그 곡을 듣고 있으면 고통도 날아올라 누군가를 동정하는 눈물이 되는 것 같다. 환상이 삶을 대신할 수는 없기 때문일까. 세상이 쓸쓸하고 가난할 때도 첼로 곡은 고독과 싸우는 사람들을 감싸 안는다. p.198

 

 

작가가 "결혼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이혼에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가장 힘겨운 순간을 향해도 농담을 던질 줄 아는 때가 나에게도 오겠지. 인생의 실패와 고독을 넘어서는 일에 대하여 생각했다.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제1번도 반복해서 들었다. 간신히 수평을 맞춰둔 감정이 기울어 한껏 울었다. 달라지는 건 없어도, 이렇게 덜어내고 비워내면 후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