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2014. 7. 8. 21:08
book judain
도서관에서 생선 김동영의 소설 <잘 지내라는 말도 없이>를 빌려 읽기 시작하는데, 몇 장 안 넘기고 걸려넘어진 구절. 
"내가 수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늘 정확한 답이 있기 때문이다. 수학 공식을 풀 때 운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다. 이미 정해진 목적지가 있고 그곳을 향해 이미 누군가 닦아놓은 길을 가거나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p.18)"


대학 졸업 무렵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흘러온 인생이 비교적 순탄한 듯 하지만, 그 시절 그 나름의 치열함과 불안이 내게도 있었다. 무슨 일을 하고 살아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의 끝에 물음표가 주렁주렁 열려 있던 날들.


그때,

고향 집에 내려갔던 나는 책꽂이에서 '수학의 정석'을 뽑아 이차방정식 부분을 펼치고 풀었다. x와 y를 구하는 것은 보기도 정답도 없는 삶의 문제들보다 훨씬 쉬웠다. 정답지를 보면 맞았는지 틀렸는지 기다리지 않아도 금방 알 수 있고, 풀이를 보면 어디서 틀렸는지도 알고 다시 옳게 풀면 됐으니까. 수학의 참 매력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그러고보니, 

컨텐츠 구성안을 쓰고 고치고, 서비스 운영 아이디어를 짜내야 하는 정답 없는 일들 가운데, 매출 마감과 각종 사업비 정산을 하며 잠시 '답 있는 문제'에 몰두하는 일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숫자가 안 맞거나 틀려 전표를 다시 쳐야해서 혼자 머리통 쥐어뜯을 때 빼고.




요즘,

개그콘서트 코너 중에 '화난 여자친구가 당분간 연락하지마 라고 했을 때, 여기서 당분간이란 몇 일인지 계산하시오'와 같은 문제풀이 개그가 있던데, 답답한 인생의 문제들 앞에서 어떤 공식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을 참 잘 짚어내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는 말도 안되는 공식과 풀이지만, 그걸 보고 웃어넘기는동안 정신이 '문제'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듯.


답이 없는 문제 앞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책하거나 절망하지 않는 건강한 정신인 것 같다.


어제 오늘 '나 왜 사나' 하며 답 없는 나날을 보낸다는 췌가 갑자기 생각난다. 곱창에 한잔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