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2014. 10. 7. 00:34

20140909. 숙소 외에는 아무 것도 정하지 못하고 도착한 베를린. 드레스덴에는 오빠야네가 있었으니 사실상 베를린이 나의 여행 첫 도시였는데, 역시나. 중앙에 내려서 한참을 멍하게 서 있었다. 나는 어디로 가야하나- 책으로 본 것과는 전혀 다른 실제 세계에서 당장 숙소를 찾는 일부터 멘붕이었다. 이 때는 정말 나에게 방향 감각이라는 것이 아예 사라졌구나 싶기도 했다. 지도에는 있다고 나오는 숙소가 왜 내 눈에는 안 보이는 것인가. 한참을 돌고 돌고. 이런 일은 여행 끝까지 계속 되었다. 







겨우 짐을 풀고 시내를 한바퀴 돌았다. 조금만 걸어가면 금방 큼지막한 공원들이 나와서 좋았다. 소세지도 사 먹고, 혼자 앉아서 여행 책을 뒤적거리고 있으니 한 아저씨가 말을 걸며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베를린에는 생각보다 동양인이 너무 없었는데, 그래서 내가 신기했나. 사진을 찍고 나서 아저씨는 나에게 태국에서 왔냐고 했다. Thailand? 중국도 일본도 아닌... 태국이라니. 7년 전 옥토버페스트에서도 뮌헨 할머니들이 나더러 "Thailand?" 했던 기억이 났다. 동남아 여행에는 별로 흥미가 없는데, 태국에는 한번 가봐야 하나 싶어졌다.









저녁 무렵에 여행 카페에서 일정이 맞으면 보자고 연락했던 한국 남자 직장인 한 명을 만났다. 같이 다니면 적어도 길 잃을 일은 없겠지ㅜ 숙소가 나와 같은 알렉산더 광장 근처라 함께 저녁을 먹고 대성당 앞 벤치에서 병맥을 마시며 늦은 시간까지 수다를 떨었다. 그는 베를린이 <타인의 삶>이라는 영화의 배경이라며 기대를 가지고 왔다고 했다. 그리고 여행, 영화, 책, 일, 살아온 인생 등 광범위한 주제로 대화가 이어졌는데, 그가 가진 삶에 대한 시선이나 감성의 결 같은 것들이 나는 맘에 들었다. 사진 한 장 없어 사실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내게 베를린에서의 첫날, 그리고 그 밤이 조금 특별하게 기억되는 이유 중에 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