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2009. 3. 29. 02:56
travel/korea judain


혼자 봄맞으러 떠나는 계획.
벼르고 또 벼뤘는데 정작 떠나려고 계획했던 26일은 아침부터 비가 왔다.
그래서 하루동안 구름이 물러나길 기다려 27일!! 어제. 다녀왔다. 

일정 : 동서울터미널 - > 영주 터미널 -> 부석사 -> 소수서원 -> 영주 - >서울 강남

부석사 당일 코스는 이 정도로 충분하다고 해서 넉넉하게 시간을 배분했다. 
영주는 '선비의 고장'이라니까!
바쁘게 동동 거리는 것보다 뒷짐지고 소요하면서 세월아네월아- 둘러보면서 선비의 기분을 좀 느껴볼까 싶었다.  


#. 출발
동서울터미널 8:45. 원래는 15분 차를 타려고 했는데, 늦잠을 잤다. 흑.
잠도 덜 깼는데, 2호선 지옥철에서 이리저리 치이고. 앞으로 계속 이런 생활을 해야한다니 정말 앞날이 갑갑허다.ㅜ
겨우 강변역 도착! 뭐 하나 사먹을 시간도 없이 표 끊고, 버스를 탔다.
배고픈 출발. 잠도 덜 깨고. 머리도 멍하고... 설레임없이 그냥 멍 하게 그렇게 나는 영주로 실려갔다.


#. 영주터미널에서 부석사로.

터미널에 내렸는데, 또 시간이 딱 맞아떨어져버리는 바람에 버스 내리자마자
11:20 부석사행 버스를 타러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또 뭐 못 사먹고ㅠ 배고픈디 흠.
여유를 즐기자던 나의 계획 모토는 어디가고-- 나는 버스 시간에 휩쓸려 쫄쫄 굶고 다녔다.




터미널에서 나와 길건너 가게들을 왼편으로 코너를 돌면 부석사 가는 버스 정류장이 있다.
알아본 바에 의하면 좌석버스 말고 27번 일반버스(1100원?)가 11시 언제 있다고 들었는데,
내가 타려고 했던 11:20 버스는!!! 좌석버스였다. 흠. 걍 탔다. 부석사까지 4000원!!!!!!!!!!!!
(아저씨한테 어디까지라고 말씀 드리면, 버스비 말씀해 주신다. 순간 귀를 의심했다. 사천원.)


#. 드디어 부석사
이건 뭔가요...
주말 사람 많다고 평일 시간을 냈는데, 날 풀린 3월 초는!!!
중고등학생의 수학여행 시즌이었다ㅠㅠㅠㅠㅠㅠㅠㅠ
이미 부석사 초입부터 학생들로 바글바글. 거기에 단체관광오신 아줌니들 바글바글. 
식당마다 단체들로 북적거려서 걍 밥 안 먹고... 물만 먹고ㅜ 부석사를 향해 올라갔다. 입장료 1200원.

여러 학교가 겹치다보니, 올라가고 내려가는 학생들 사이에서 미묘한 신경전이 느껴졌다.
그 나이 때 자연스러운 태도인 '다른 학교 남학생 여학생을 의식하기'였다.
좀 노는 어떤 남학생 무리는 어줍짢은 정장 차림을 하고 있어서 내 손발을 오그라뜨렸다. 으으.






계속 계속 열심히~ 걸어올라갔다. 공복 상태였지만, 발걸음은 가벼웠다. 근데 바람이 불어서 자꾸 콧물이 났다. 흑.
그리고 무량수전을 만났다.














일단 학생들이 빠져나가길, 딩댕댕 풍경을 울리는 바람만이 이 산사에 남을 때 까지 기다렸다.
콧물을 닦으며... 물도 마시고, 차오른 숨도 돌리고. 멀리 첩첩 내려다보이는 세상 쪽으로 다리를 뻗고 그렇게 쉬었다.


무량수전은 특히나 예의 배흘림 기둥들이 훤칠하게 뻗어있어 눈맛이 사뭇 시원한데, 결구방식은 아주 간결하여 강약의 리듬이 한눈에 들어온다... 부석사의 절정인 무량수전은 그 건축의 아름다움보다도 무량수전이 내려다보고 있는 경관이 장관이다. 바로 이 장쾌한 경관이 한눈에 들어오기에 무량수전을 여기에 건립한 것이며 앞마당 끝에 안양루를 세운 것도 이 경관을 바라보기 위함이다. 안양루에 오르면 발 아래로는 부석사 당우들이 낮게 내려앉아 마치 저마다 독경을 하고 있는 듯한 자세인데, 저 멀리 산은 멀어지면서 태백산맥 연봉들이 남쪽으로 치달리는 산세가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이 웅대한 스케일, 태백산맥 전체가 무량수전의 앞마당인 것처럼 끌어안은 것이다. 이것은 현세에서 감지할 수 있는 극락의 장엄인지도 모른다.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2) 


나는 그 유명한 책 이름처럼 배흘림기둥에 기대 서서 큰 호흡을 하며 그동안의 넘치거나 모자랐던 생각들을 정리정돈 하고 싶었다. 그것이 이 짧은 여행의 목적이었다. 하지만 무량수전을 마주하고, 멀리 아득하게 펼쳐진 산을 보니 아무 생각도 하기 싫어졌다. 그냥 '좋구나!' 하는 마음 뿐이었다.

사람들이 조금 찾아들어 나는 다시 무량수전을 왼편으로 두고, 올라갔다. 조사당이 있었다.
의상대사가 꽂은 지팡이에서 꽃이 핀다는 전설이 있는 그 선비화(골담초)를 보기 위해서였다.
산을 좀 더 올라와서 그런지 더 조용하고 아늑했다.
조사당 곁에 만들어져 있는 돌탑들 위에 나도 진심 하나를 얹고 다시 내려왔다.




















#. 조용히 즐거운 소수서원

또 다시 단체관광객 무리가 오는 듯 싶어 부석사를 뒤로 하고 내려왔다.
어느덧 공복의 괴로움은 잊었고, 나는 다음 발걸음을 옮겼다.
부석사에서 소수서원까지는 버스 1600원. 아저씨한테 말씀드리면 맞춰서 세워주신다.
소수서원은 입구에서 보기만 해도 드넓길래 그냥 마음을 편히 먹었다. 지치면 쉬어가지 뭐.
입장료 어른 3000원! 어윽. 생각지 못한 큰? 지출이다. 허허허.

혼자 소수서원 입구에 들어서고 있는데, 관리사무소 직원인 듯 보이는 아저씨가 말을 걸어오셨다.
수학여행에서 낙오된 학생처럼 앳띠게(ㅎㅎㅎ) 보신 것이었다.
나는 수줍었지만 당당하게 나이를 밝혔고!
아저씨는 소수서원 부분만 간단하게 가이드 해 주셨다.
아저씨와 함께 다니고 보니 소수서원 사진을 안 찍었구나;;









여기부터는 선비촌! 소수서원 바로 옆으로 이어져있다.
입장료 3000원에 선비촌과 소수박물관 관람료까지 포함되어 있는 것이었다. 









선비촌 체험도 하고 그래서인지 세면장 안은 완전한 현대식으로 지어져 있었다.
집집마다 건물 형태도 다르고, 분위기도 다르고.
집 보러 다니는 부인 마냥 구석 구석 몇 집을 보고 나니 힘들어져서 또 한타이밍 쉬었다. 

그리고 셀프타임~~ 실패한 컷 두장! ㅋㅋㅋㅋㅋ







선비촌 입구에 있는 모아이 같은 나무 장승과도 한컷 찍고 ㅋㅋㅋ 으하하하하하, 마음에 든다!

소수박물관에 들러서 소수서원에 명종이던가 그 분이 내린 현판을 보았다. 그리고 기념으로 탁본을 떴다.
별 거 아닌데 한번 실패하고 나서, 더욱 진중하게 탁본을 떴다. 그래도 저 모냥으로 떴지만 ㅎㅎㅎㅎ
기념으로 간직해야지~ 하고 말리기 위해서 계속 펼쳐들고 걸어다니는데, 이상하게 뿌듯했다.






소수서원 현판도 탁본으로 뜨고. 아 이렇게 나의 여행이 끝나는구나.
버스 정류장에서 또 셀카찍고 놀고 있으니 금방 버스가 왔다. 정말 굿타이밍!!!
소수서원에서 영주터미널까지는 2400원. 아까 소수서원까지 가는 1600원이랑 합치면 곧장 터미널 가는 요금이랑 같다.
결국 부석사-영주는 거리상으로 4000원. 치밀한 요금 시스템이다!


#. 서울로

너무나 운이 좋아서 마침 터미널에 도착하니 15분 뒤에 서울 강남센트럴시티로 가는 버스가 있었다.
표를 끊어놓고 터미널 안에 있는 분식집에서 간단히 김밥을 먹었다.
아주머니는 굉장히 인상이 좋으시고 친절하신데,
다른 손님들이 나가고 나 혼자 남게 되자...
팔다리어깨 안 쑤신 데가 없네, 어떤 이는 라면 하나 먹으면서 한 시간을 문자질 하네 등등-_ㅜ
계속 말을 거셨다. 흙.
테이블이 아니라 바(Bar)로 되어 있어서 계속 아주머니 쪽을 향해 있어야 했는데
15분 안에 김밥을 먹어야 하는 미션에 도전하는 나로써는 굉장히 곤혹스러웠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서울로.
다리가 뭉쳐서 피곤한데 잠은 제대로 안 오고. 버스에 티비도 안 틀어주시고ㅠ 
금요일이라 서울 들어오는 데서 차가 막혀 3시간 조금 넘게 걸려 도착했다. 

나름 혼자 멀리 떠나는 여행이라 의의가 컸고,
새로운 출발에 앞서 몸과 마음 자세를 reset 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더욱 알찼던!!! 나의 짧은 여행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아 감격적이다.



참고.

지출내역
고속버스 왕복 13600 x 2 = 27200
영주 시내버스 4000 x 2 = 8000
입장료 (부석사 1200, 소수서원 3000) = 4200
김밥 2500

헉, 챙겨간 물, 사탕, 껌값 생각 안 하면 419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