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정한아 소설집 뒤에 문학동네의 다른 소설들 소개란에서 본 책.
'아내가 결혼했다'의 저자 박현욱이 지었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잡아끌어서 오빠야한테 도서관에서 빌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아내가- 뿐만 아니라 '새는'도 잘 읽었었다.
9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참 많이 공감했을 것 같은. 노티나게 난 또 그런 이야기에 끄덕였었다.
제목이 좀 그런가. 지하철 오며 가며 서서 읽는데, 앞에 앉은 사람들이 책 표지를 빤히 쳐다보는 것 같았다.
오빠야한테 이 얘길 해줬더니, '그 여자의 침대에 그 여자만 있는 건 아니겠지.'
뜨억!!! 딩동댕. 참 보편적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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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때문에 불편했던 이틀이 어떤 일 년처럼 아주 긴 시간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또 순간의 일이었던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틀이라는 시간이 일 년으로도 혹은 찰나로도 여겨지는 것은 기껏해야 한 뼘 남짓한 겨우 이십 센티미터의 좁은 폭 때문이었다. 그 좁은 폭은 사각지대로 사라졌던 기억들을 다 끌어안고 있을 정도로 한없이 깊었다. 손때가 전혀 타지 않은 새 침대의 좁은 폭 안에 가장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것들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었다. 그것은 깊은 심연 같아서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몸이 그 밑으로 가라앉게 되어 영원히 헤어나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 여자의 침대 / p.29]
삐그덕거리는 철제침대를 버리고, 새로 더블침대를 샀는데 무한히 넓게만 느껴지는 폭 때문에 괴로워하던 주인공이 교환 배송료를 감내하고 슈퍼싱글로 바꾼다는 내용이다. 차마 그 폭의 불편함을 현재의 애인에게 말하지 못한다. 소설은 하필이면 침대라는 공간을 말했지만, 나는 모든 연애나 사랑이 쓰나미처럼 남기고 간 것들을 떠올렸다.
가을 즈음에는 이사를 할 것 같다. 벌써부터 어떤 볕이 드는 집에 어떤 가구를 어디에 놓을까를 고민하고 있는 내게 '침대'는 당연히 짊어지고 가야할 것이었는데, 슈퍼싱글이나 더블로 바꾸고 싶은 욕망이 살짝 생겼다. 일단 집이나 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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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같은 건 시간 낭비다. 몸은 노화한다.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으면 머리 쓰는 일을 피하고, 적게 먹고, 몸을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그리 좋은 일은 아니다. 술이란 건 많이 마시면 몸에 해롭고, 적당히 마시면 정신건강에 해롭다. 취하지 않은 어정쩡한 상태에서 불 꺼진 집으로 혼자 터덜터덜 걸어 돌아오는 길은 씁쓸하기 이를 데 없으니 말이다. 그걸 피하기 위해 취할 때까지 마시면 출근길이 힘들다. [생명의 전화 / p.72]
지하철에서 읽다가 헛헛한 웃음이 나왔다.
지금을 살고 있는 내게, 이 시대를 읊는 솔직한 소설들은 무엇을 남기는가. 잘은 모르겠지만.
자꾸 젊은 소설 작가들의 작품에 손이 간다. 나약하고 외로운 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서.
내 하루, 일주일, 인생 또한 소설같다.
다섯 알 밖에 안 들어있는 2000원짜리 감자(개당 400원이란 말인가! 맙소사) 봉지를 들고 후덜덜
700원짜리 반통 양상추를 들고 동전을 세고 있는 언젠가의 인간극장 주인공 모습과 다르지 않다.
동네에 늘씬한 총각 둘이 돌아다니는 걸 보면서 흐뭇하기도 잠시,
이준기가 겪은 것처럼 모델이나 배우가 되기 위해 상경한 미남의 고된 일상사나 상상하고 앉았다.
청춘이 아니라 청승이다.
고마운 주말이 왔기 때문에, 나는 또 즐겁게 읽고 보고 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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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에서 영화<보이A>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다.
박현욱과 함께 보는 영화 이벤트란다.
넙죽 신청하기에는 일들이 많아서 일단은 패스.
참 아까운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