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곧 이사를 간다. 새로 살 집 건물에는 너른 옥상이 있다. 빨래줄도 있고, 몇 가지 야채쌈 화분을 갖다 놓아도 좋을 공간이 되는 큰 옥상이다. 서울에서 마당있는 독채 구하기란 평생 '억'소리 나게 어려운 일이니, 하늘로 솟는 원룸 건물을 전전긍긍하면서도 마당못지 않은 여유를 부릴 수 있는 몇 평의 옥상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 무척이나 기쁜 참이다. (소유가 아니라 세입자의 권리로 공유하는 개념이지만, 어쨌든)
최근 나온 신간 중에 마당에 관한 에세이를 발견했다. 책 제목은 <마당의 순례자>다.
동화작가이자 기자인 저자 서화숙은 서울 종로구 부암동의 마당있는 단독주택에 살면서 마당을 가꾸며 보낸 지난 몇 해의 기록을 이 책에 펼쳐내고 있다. 꼭 멀리 '떠나야'만 자신의 진정한 삶을 깨우칠 수 있다고 믿는 이들, 돈이 많아야 행복해진다고 믿는 이들에게 '지금 곁에 있는 행복'을 발견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단다. 자세히 읽어보진 않았지만, 정작 저자 자신은 값 비싼 부암동의 마당있는 집에서 유유자적하며 돈이 전부가 아닌 '행복'을 운운하는 것이 은근 아니꼽기도 하다. 서울 한복판에서 마당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돈이고, 행복이지 않겠는가? 하는 상대적 빈곤자의 배앓이일 뿐이니 이 책의 관계자는 담아두진 말게나.
마음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마당가진 자에 대한 부러움'을 상쇄시킬 수 있을만큼 강력한 옥상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그녀가 가진 '마당'에 내가 곧 갖게 될 드넓은 '옥상'이란 공간을 크로스오버 해 보니, 어? 생각보다 다채롭다.
옥상에서 텃밭을 가꾸고 생명이 자라는 것을 지켜보며 삶의 고마움을 갖는 주말 오후나
한겨울 눈이 펑펑 내린 날 아무도 밟지 앟은 신대륙 같은 옥상 땅 눈밭에 나의 발자국을 최초로 '쿡' 찍어보는 어느 아침같은.
마당못지 않은 여유로움과 즐거움의 기대가 샘솟는다.
이사가 며칠 안 남았다. 지난 주말부터 벌써 짐을 꾸려놓고 박스 가득한 방에서 하루살이를 연명하고 있다. 오년 남짓 살았던 골방이라 그런지 떠날 준비가 쉽지 않다. 전생에 달팽이가 아니었는가 싶다. 여태 이고 지고 다니던 것을 잘 버리지 못하니 말이다. 겨우 솎아내 버리고 못내 아쉬운 것들은 온통 '잡동사니'라는 이름의 박스에 담았다.
오빠 방에 있던 오디오며 커피메이커며 없어도 죽지 않을 것들을 기를 쓰고 챙겼다. 보나마나 금새 먼지를 뒤짚어 쓸 물건들이다. 하지만 나의 윤택하고 고결한 홀로서기에 기쁨을 더해줄 아이템이다. 주저할 수 없다. 늦은 밤 싱크대를 넘쳐오르는 그릇들을 한꺼번에 거품목욕 시킬 때, 이웃에 방해될까 노심초사하며 헤드폰을 쓰고 춤을 추는 대신 오디오 곁에 앉은 그대에게 "쟈기, 7번 트랙 부탁해"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을 기대한다. 갓 내린 커피 향기가 온 방안을 맴돌 때 나의 눈을 맞춰주는 것이 단지 모기나 바퀴벌레가 아닌 그대이기를 소망하기도 한다. 음. 슬며시 씁쓸한 웃음이 난다. 이만 간만의 포스팅을 마무리 지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