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2010. 3. 13. 14:57
book judain

 


만지작 만지작 할 틈도 없이,
서점에서 잠깐의 훑어봄으로도 충분한 구입 가치를 느낀 책
'세계 도서관 기행(유종필/웅진지식하우스)' ->정보보기

운 좋게 선물을 받아서 요즘 출퇴근길에 틈틈이 읽고 있다.
세계 최초의 도서관 '알렉산드리아도서관'부터 프랑스 파리 '미테랑 국립도서관',
'리슐리외국립도서관', 'British Library',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도서관' 등 
거대한 역사와 인류의 기록을 아우르고 있는 세계 지성의 보고들을
안내받는 기쁨이 쏠쏠한 책이다.

도서관과 책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겐 꿈과 같은 '도서관 기행'을 다녀온 저자는
다름아닌 국회도서관장 '유종필'. 그의 권위 덕분에 우리는 일반 여행자들에게는
공개되지 않는 세계 유수의 도서관 곳곳을 이 책에서 비교적 상세하게 볼 수 있다.

'인간이 이룩한 위대한 지식의 탑을 수십 개나 탐방한 것은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행복감과 감동을 안겨주었다.
이 깊은 감동을 혼자서만 누리는 것은 은밀한 행복은 될지언정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은 아니다.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어 이 책을 쓰게 되었다' p.8


서문에서 밝히는 저자의 집필 의도를 읽고 나는 속으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외쳤다. 2007년 다녀온 유럽여행 중에
몇 개의 도서관을 들렀었는데 대화도 안 통할 뿐더러 대부분의 열람실이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아 아쉬운 발걸음을
돌린 터라 그 고마운 마음이 더 컸는지도 모른다. 사서들과의 대화를 통해 얻은 지식이나 책과 지성에 관한 유익한 팁들도
잊지 않는 저자 유종필의 센스있는 글들은 '도서관에 담겨있는 역사와 철학, 사람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는 욕심만큼이나
(어르신한테 이런 표현을 쓰면 안되지만... ) 기특하다!


이제 반쯤 읽고 있지만 지금까지 책의 내용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프랑스 리슐리외국립도서관 사서에 대한 이야기다.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993년 미테랑 대통령은 고속열차인 TGV를 팔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이때 외규장각 의궤 297책의 반환을 약속하고 그 중 맛보기로 <휘경원원소도감의궤>라는
책 한권을 가져왔는데, 따라온 국립도서관 여자 사서 2명이 책을 반환하기로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자
책을 내놓지 못하겠다고 고집을 피운 것이다. 외무장관이 장시간 면담으로 설득을 시킨 후에야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책을 내놓아 일단락 되었지만, 당시 그 사서는 귀국하여 사표를 제출하면서
언론에 사임의 변을 이렇게 냈다고 한다. "이것은 명예의 문제다. 우리는 프랑스의 이익과 합법성,
그리고 직업윤리에 반하는 행위를 강요받았다." p.103


그 후 결국 TGV는 우리나라에 팔고 외규장각 의궤 반환 약속은 지키지 않았다고 한다.
약탈 문화재를 합법적 재산이라는 억지에 사서로서의 책을 지키는 의무를 갖다붙여 놓으니
참 그럴 듯 하다지만, 그만큼 문화대국을 이룩하는데 사서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은
참 자랑스러운 일..!
흩어져있는 한국학 사료들에 대해 반환 의견을 피력하고 끊임없이
추적해 나가는 것 역시 국내 외에서 활동하는 많은 사서들의 역할이 아닐까 한다.


매일 책에 묻히고 치이는 삶의 통풍구 역할을 독톡히 해 주는 '세계 도서관 기행'.
책이 있어 행복한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호감을 가질 이야기들이 가득한 이 책에서
가장 나의 가슴을 저릿하게 한 구절은,
 
'집에서 이따금씩 나를 '관장님'이라 부르는 사서 출신 아내에게 이 책을 바친다'.
도서관, 그리고 책에 대한 같은 생각과 꿈을 가진 배우자와의 삶은 얼마나 행복으로 충만할까.
그나마 나에겐 이 책 한권으로도 많은 생각과 감동을 공유할 '친구'들이 많아 참 다행이다 싶다.
여러 친구들에게 추천하고, 또 선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