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해운대에 가자고 했다. 뙤약볕 아래 펼쳐진 백사장과 파라솔이 연출하는 장관도 보고, 조개찜도 먹고 냉채족발, 완당도 먹자고 했다. 그렇게 친구들과 약속을 하고 서울에서 출발하는데 태풍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설마.
그리고 휴가 3일차. 해운대 가기로 했던 그 날에 딱맞춰 정말 태풍의 영향력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비바람이 불었다. 어쩔. 우리는 카톡방에 비상대책위원회를 열었고 김해 아울렛, 대명리조트 워터파크, 문동폭포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결국 선택은 문동폭포. 콸콸 쏟아지는 폭포수를 보며 득음을 하자!! 비를 맞으면서 뿔난 망아지처럼 뛰댕겨보자!! 서둘러 여벌옷을 챙기고 나설 준비를 했다. 화장은 워터프루프로.
집에서 문동폭포 근처 성엣장 집까지는 6.4킬로. 거리로만 보면 달려갈 수도 있을만큼 가까웠지만 아빠 차를 읃어탔다. 휴가시즌이라 외지에서 놀러온 사람들이 많은지 도로에 차들이 넘쳐났는데 동네를 빠져나가는데만도 한참 걸렸다. 비도 오는데 다들 어딜 가는거야~ 그러는 나는 ㅎㅎ
드디어 도착한 성엣장 집. 10년만의 방문인데 여전히 별장같고 펜션같고 좋았다. 전형적인 경상도 손 큰 어머니의 옥수수 바가지를 보고 한번 빵터져주시고, 함께할 쏭쏭이친구가 올때까지 무한도전 재방을 보며 대기. 틈틈이 흥나는 대로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본 조인성 댄스를 춰가면서 꺌꺌댔다. 십대의 기분이었다.
곧 쏭쏭이 와서 옥수수, 자두를 챙겨들고 물에 뛰어들 복장을 하고 출동! 방수팩이 없는 관계로 핸드폰을 놓고 가서 사진을 못찍었는데, 첨벙첨벙 들어가서 폭포수 아래에 등도 뉘고 발장구도 쳤다. 문동폭포 홍보대사인 성엣장은 "이 물이 1겁수"라는 네이티브 발음으로 우릴 웃겼다. 피서 제대로 왔다며 좋아하다가, 근데 안 더운게 함정- 하면서 또 꺌꺌. 서로가 무슨 말만 하면 다 웃겼던 것 같다. 중딩의 기분이었다.
비를 쫄딱 맞으며 이렇게 놀아보는게 얼마만인가. 뭔가 한 짓들이 유치함 투성이었는데, 나는 그중에서도 가위바위보에서 계속 진 쏭쏭이가 지압길을 맨발로 걸으며 보여준 '고행의 길을 가는 사람의 자세'가 기억에 남는다.
줄기차게 비가 내렸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일정을 진행했다. 씻고 다시 화장을 하고 언제 그러고 놀았나 싶게 차림새를 정비하고는 시내에 먹방 투어를 나갔다.
1차는 중곡동에 있는 '녹슨드럼통'. 1kg 44,000원짜리 기본을 시키면 초벌된 고기가 나오는데 껍데기도 있고, 삼겹살도 있다. 거제 맛집이라고 하는데 정말 살벌하게 맛있음! 특히 껍데기.
2차는 카페 드롭탑에서 스마트월렛 쿠폰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이제 뭐먹지- 고민하면서 쉬어가는 타임.
겨우 생각해낸 3차는 훌랄라 치킨인데, 찾아갔으나 가게가 사라졌는지 안보이고 비바람은 점점 강해지고 해서 근처에 보이는 불로만 치킨으로 들어갔다. 상상했던 '떡 들어있는 바베큐 양념 닭'을 먹을 수 있어서 흡족했다. 치맥치맥.
이제 먹는 건 못하겠다 하고 4차는 노래방에 갔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는 우리들은 '서른즈음에'를 쿵짝쿵짝 디스코 버전으로 가볍게 불러넘겼다. 이어지는 예약 예약.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힘들어하고 그런 가사의 노래들이 뭐 그렇게나 많은지. 요즘 감정 상태로는 감정이입이 되지않아 다행이었다. 사랑은 추성훈 딸일 뿐이다.
태풍온다는 날에 낮부터 문동폭포에서 놀겠다고 나간 딸들의 생사 소식을 묻는 문자와 귀환을 청하는 연락들을 받고서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향하는 택시를 탔다. 택시에서 내려 집에 들어가는 사이에 날아갈 듯한 바람이 불어 냅다 뛰다가 물웅덩이를 잘못 밟고 운동화가 침수됐다. 므잉. 첫 태풍의 피해.
그리고
들어와서 엄마가 삶아놓은 고동을 먹었다. 저번에 먹고 싶다고 한 후로 엄마는 이제 내가 매번 내려올때마다 사놓을 태세다. 시장에서 둘러보다가 '한소쿠리 줘보소' 하고는 '딸래미가 좋아하는 거'라고 누가 묻지도 않은 말을 덧붙여가면서 사겠지. 그렇게 안봐도 뻔한 게 엄마 마음이라는 걸 나는 잘 알면서도 또 으르렁 대고 있다. 밥 안칠때 다시마 한조각 넣어서 하라는 말을 열번째 듣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밤늦도록 애미넴의 인생한탄과 생활상식을 넘나드는 잔소리 랩은 끝날 줄 모르고.
휴가 3일째, 안팎에서 태풍이 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