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2014. 11. 2. 21:44
book judain

책 <깊이에의 강요> 속 마지막 단편 '...그리고 하나의 고찰'은 과거에 내가 '그 책'을 읽었으나 기억나지 않는 문제에 대해 말한다. 읽는 동안에 분명 "뒤죽박죽으로 엉켜 있는 내 의식에 길을 내고 유례없이 새로운 시야를 열어 주고 새로운 인식과 연상들을 샘솟게" 하는 경험을 하였으나, 시간이 흐른 뒤 그 책이 무슨 내용이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문제. 여기서 작가는 읽었으나 안 읽은 것이 되어버리는 이 현상을 두고 '책의 내용은 뇌리를 스쳐지나가도 그 경험은 서서히 무의식에 스며들어 삶을 변화시켰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책을 덮고 멍하게 눈 앞의 책장을 바라보다가, 그 '문제의 책'들이 수두룩한 걸 발견했다. 주인공의 이름이나 줄거리 같은 내용은 커녕 어떤 의미로 남았고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조차 남아있지 않은 책들. '그래. 그 책을 읽던 당시의 나에게는 어떤 작용을 했고, 어떤 변화가 (나몰래) 있었고, 그래서 지금의 내가 되었겠지.' 쥐스킨트가 말하는 식으로 나를 위로해보지만, 그간 엄청나게 들인 책값이라는 인풋에 비해 얄팍한 아웃풋의 내가 참으로 짜증이 났다.



이 단편의 타이틀이기도 한 <깊이에의 강요>에서 다루는 '깊이'라는 것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는데, 그럴수록 너무 쉽게 드러나는 나의 바닥이 못마땅하고 속이 상하는 요즘이다. 자존감 회복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