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2009. 1. 15. 22:11
ordinary
judain
요즘 나에게 일어난 이런저런 일들. 연연하지 말자- 하고는 사소한 것에 빠져들기를 즐기고 있다. 어제는 퇴근길에 오빠야 양복을 세탁소에서 찾아야했다. 우리동네에서 제일 미심쩍은 아저씨가 운영하는 세탁소여서 썩 내키지는 않지만, 어쨌든 골목 초입에 있는 세탁소니까 그냥 쉽게 살기 위해 그 곳을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저씨는 손님에게 먼저 말걸지 않는다. 밀어야 할지 당겨야 할지부터 고민되는 그 세탁소 문을 통과하는 순간 아저씨는 '왜 왔냐'는 얼굴로 빤히 쳐다본다. 그래서 나도 아무 말 안 하고 있으면 아저씨는 퉤-하고 내뱉듯 "뭐!" 하신다. "옷 찾으러요." 라고 나의 용무를 대답하면 그제서야 "이름!" 하곤 내 옷을 찾아주려고 하신다. 길게 대답하는 법이 없으신 그 아저씨가 처음으로 장문에다가 마침표를 찍으며 끝나는 말씀을 하신 건, 저녁 8시 무렵 아저씨 내외가 식사를 해야 하는 시간에 급하게 수선해야 하는 옷을 맡기러 갔을 때였다.
" 우리도 밥은 먹고 해야지, 지금 갖다주면 우린 뭐 굶으면서 일하라고? "
까칠하기 그지없는 이 아저씨가 어제는 어떤 아가씨와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아가씨는 얼굴을 울그락불그락 하며 코트 세탁값이 다른 곳보다 비싸다는 것이었다. " 싼 곳도 있으니 거기로 가던가, 근데 우리가 보통으로 받는거야. 그리고 우린 좀 더 깨끗하게 세탁해 드리지... " 옆에서 듣고 있던 내가 민망해 질 무렵, 아가씨는 결국 코트를 집어들고 다른 세탁소로 가겠다고 하며 나가버렸다. 탁월한 선택이지 않나 싶었다. 세탁소는 옷을 깨끗하게 세탁하러 오는 곳인데, '좀 더 깨끗'하게 세탁하는 건 어떻게 하는거지? 훗.
한참만에 오빠야 양복을 찾고는 골목을 올라가는데, 문득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가 떠올랐다. '생각보다 빨리 헤엄친다'였는지 '의외로' 였는지 늘 헷갈리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오빠야는 그 세탁소 아저씨, 스파이 같다고 했었다.
손톱보다도 작은 스파이모집 공고 딱지를 우연하게 발견한 주인공이 자신의 어중간한 삶을 탈피?하기 위해 스파이가 되는 내용.이던가?... 사소하거나 의식하지도 못하는 시간과 공간의 틈새를 통해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거라는 믿음을 마구 심궈주던 영화였다.
그 아저씨는 스파이일까. 컴퓨터세탁이라고 붙은 간판과는 다르게 탈수통에 머리를 숙여넣고 일일이 수작업을 하시는 모습을 발견했을 땐 정말 의심이 상승했다. 세탁도 스파이 활동의 하나일까. 나쁜 사람들의 옷엔 돌려주기 전에 어떤 해코지를 하는 것은 아닐까. 이 동네 어딘가에 사는 누군가를 지켜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언젠가 동네 뒷산에 마실 갔을 때, '무장공비 모모씨가 장비를 은닉했던 곳'이라는 안내판을 본 적이 있다. 며칠 전엔 윗집에서 보일러가 터져 우리 집까지 물의 테러를 받았었다. 이렇게 무심코 넘겼던 갖가지 단서들이 떠오르면서, 내가 세탁소 아저씨를 수상하게 생각하고 있는 사실을 위협받으며 이제 이 동네를 떠날 날이 머지 않았음을 느끼게 되었다.
사람이, 자꾸 생각하면, 이상해지나보다. 하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