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공지사항
식후에 이별하다
연남동 야매 교습소의 이름을 'workroom without sorrow'로 할까 한다고 박카피님이 말했다. 시집 에서 따온 것이라고. 광화문 외근길에 그 시집을 샀다. 그리고 퇴근길 지하철에서 넘겨보는데, 시 '식후에 이별하다'에 후욱- 마음이 구멍이 나고 슬픔이 새기 시작했다. 식후에 이별하다 심보선 하나의 이야기를 마무리했으니 이제 이별이다 그대여 고요한 풍경이 싫어졌다 아무리 휘저어도 끝내 제자리로 돌아오는 이를테면 수저 자국이 서서히 사라지는 흰죽 같은 것 그런 것들은 도무지 재미가 없다 거리는 식당 메뉴가 펼쳐졌다 접히듯 간결하게 낮밤을 바꾼다 나는 저기 번져오는 어둠 속으로 사라질테니 그대는 남아 있는 환함 쪽으로 등 돌리고 열까지 세라 열까지 세고 뒤돌아보면 나를 집어 삼킨 어둠의 잇몸 그..
접기로 한다
judain. all rights reserved. 이번에 준비하는 시 컨텐츠는 더욱 감명깊다. 접기로 한다 박영희 요즘 아내가 하는 것을 보면 섭섭하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하지만 접기로 한다 지폐도 반으로 접어야 호주머니에 넣기 편하고 다 쓴 편지도 접어야 봉투 속에 들어가 전해지듯 두 눈 딱 감기로 한다 하찮은 종이 한 장일지라도 접어야 냇물에 띄울 수 있고 두 번을 접고 또 두 번을 더 접어야 종이비행기는 날지 않던가 살다보면 이슬비도 장대비도 한 순간, 햇갈에 배겨내지 못하는 우산 접듯 반만 접기로 한다 반에 반만 접어보기로 한다 나는 새도 날개를 접어야 둥지에 들지 않던가
입
시 컨텐츠를 만들면서 알게 된 문숙 시인님의 블로그를 보다가 읽게 된 시 한 편. 입 잘 열리던 간장병뚜껑이 열리지 않는다 병과 뚜껑이 심하게 달라붙었다 입이 막혔다 병속에 검은 침묵이 담겨 있다 미역국을 끓이다 간을 치지 못해 동동거린다 쉽게 제 속을 내어주던 것의 입막음에 힘이 든다 내 손길에 수도 없이 열고 닫히는 동안 뚜껑에 자잘한 앙금이 끼었다 스스로 닫아건 마음이 완고하다 답답한 생각에 멀리 있는 어머니께 방법을 묻는다 - 당장 따뜻한 물속에 담구거라 꽉 끼어서 힘들 때는 무조건 따뜻이 하는 기라 그라고 자주 쓰는 주둥이일수록 항시 깔끔하게 처리 허고 - 《시작》08년 봄호 문숙 시인 블로그 : http://blog.naver.com/bosal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