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리크 쥐스킨트
공지사항
읽었으나 읽지 않았다
책 속 마지막 단편 '...그리고 하나의 고찰'은 과거에 내가 '그 책'을 읽었으나 기억나지 않는 문제에 대해 말한다. 읽는 동안에 분명 "뒤죽박죽으로 엉켜 있는 내 의식에 길을 내고 유례없이 새로운 시야를 열어 주고 새로운 인식과 연상들을 샘솟게" 하는 경험을 하였으나, 시간이 흐른 뒤 그 책이 무슨 내용이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문제. 여기서 작가는 읽었으나 안 읽은 것이 되어버리는 이 현상을 두고 '책의 내용은 뇌리를 스쳐지나가도 그 경험은 서서히 무의식에 스며들어 삶을 변화시켰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책을 덮고 멍하게 눈 앞의 책장을 바라보다가, 그 '문제의 책'들이 수두룩한 걸 발견했다. 주인공의 이름이나 줄거리 같은 내용은 커녕 어떤 의미로 남았고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조차 남아있지 않은 책..
비둘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열린책들. 1994.
좀머씨 이야기, 향수, 콘트라베이스, 비둘기... 쥐스킨트 작품은 이 네 권 밖에 읽어보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고등학교 때 좋아하는 작가를 물어보면 쥐스킨트!라고 대답했다. 이후에 향수가 영화화되고 쥐스킨트가 더 이상 나만의 숨겨둔 남자친구 같은 작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 다음부터 나는 쥐스킨트를 멀리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 그의 은밀한 삶과 세상에 대한 관찰력이 내 안에 스며들었다는 것을, 다시 비둘기를 읽으며 느꼈다. 새삼. 쥐스킨트가 좋다고 말하고 싶어졌다. 플랑슈 가에 있는 집 7층, 24호. 사랑의 감정을 느낄 만큼 마음에 꼭 맞는 이 공간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삶을 살아가던 조나단이 어느 날 문 앞 복도에서 비둘기 한마리와 맞닥들며 우르르쾅쾅 흔들리는 일상을 경험하는 이야기다.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