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공지사항
너의 나라에서
매일은 아니지만 차군이 나를 잔소리 하게 만드는 일들을 한 컷으로 기록하고 있다. 왜 나 한입도 안주고 혼자 다 먹어? 왜 약속 안지켜? 말을 꺼내다보면 화나 짜증이, 서운함이 증폭되는데, 대신 메모를 하고 앉아있으면 많이 누그러진다. 내가 일어나 달려들지 않고 말없이 펜과 노트를 꺼내면 차군은 또 뭘 쓰나 하며 눈치를 본다. 뒤에서 몰래 빼꼼히 보고 있을때도 있다. 써놓은 걸 보려고 하면 이건 유료콘텐츠라고 말하는데, 아직 제값을 치른 적이 없다. 그래 초반엔 무료로 풀어야지. 남편의 치부책을 써내려가는 나와 달리, 매일의 사랑을 그림일기로 남기는 스페인 남자의 책을 알게 됐다. 책 소개만 보고 읽어봐야지 했는데 온라인에는 재고가 없어 퇴근길에 교보문고 합정점에서 남은 한 권을 손에 넣었다. 제목은 ...
이해
"내가 가까스로 발견해낸 건 만일 우리가 타인의 내부로 온전히 들어갈 수 없다면, 일단 그 바깥에 서보는 게 맞는 순서일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그 '바깥'에 서느라 때론 다리가 후들거리고 또 얼굴이 빨개져도 우선 서보기라도 하는 게 맞을 것 같았다. 그러니 '이해'란 타인 안으로 들어가 그의 내면과 만나고, 영혼을 훤히 들여다 보는 일이 아니라, 타인의 몸 바깥에 선 자신의 무지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그 차이를 통렬하게 실감해나가는 과정일지 몰랐다. 그렇게 조금씩 '바깥의 폭'을 좁혀가며 '밖'을 '옆'으로 만드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그 이해가, 경청이, 공감이 아슬아슬한 이 기울기를 풀어야 하는 우리 세대가 할 일이며, 제도를 만들고 뜯어고쳐야 하는 일들 역시 감시와 처벌 이전에, 통제와..
나의 생활
차군이 당직 근무를 하면 하루 저녁과 밤 시간이 온전한 내것이 된다. 그 다음날 일찍 퇴근한 차군도 내가 퇴근하기 전까지 자유시간을 누린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 시간을 각자 은밀하게 계획한다. 차군은 집에서 미드를 몰아보고 있을 게 뻔하여 나는 크게 걱정하거나 궁금해 하지 않는다. 개인 활동은 믿음의 범주 안에 있다. 자유로운 저녁 시간을 맞이한 어제는 퇴근길에 합정 교보문고에 들렀다. 읽고 싶은 책 후보가 몇 있었는데, 직접 들춰보고 나서 남은 것은 하루키 신간 뿐이었다. 가만한 나를 가장 멀리 데리고 나가 놀아줄 이 이야기책을, 차군 다음으로 친하게 지낼 '이달의 책 친구'로 결정. 이제 두 챕터 읽었는데 재밌다. 8월 안에 다 읽을 수 있으려나.
책을 읽을 타이밍
이사하면서 거의 책장 하나를 중고책방에 내다 팔았다. 허무한 욕망이여. 이제는 소유욕을 버리고 책은 도서관이나 회사에서 빌려읽자 다짐했건만. 살림에 대한 책임도 커지고 용돈도 줄었는데, 요즘들어 아등바등 책은 더 사고 있다. 봄철 식욕 돋듯이 장마철 꼼짝없이 갇혀있을 생각에 독욕이라도 오른 것일까마는. 읽기나 읽고 또 사면 몰라도. 최근 베스트셀러 상위권 중에서 몇 권이나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기보다 억척스럽다. 죄책감에 시달릴 무렵, '책은 읽으려고 사는 것이 아니라 산 책 중에 읽는 것'이라는 소설가 김영하의 알쓸신잡 어록에 조금은 위안을 얻었다. 집에서 커피를 내리면 책을 읽을 타이밍, 차군이 거실에서 자기 취향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책을 읽을 타이밍, 티비에서 홈쇼핑..
about love 2
p.109 작가 앙드레 말로는 프랑스의 초대 문화부 장관이었다. 드골이라는 우파 정치인은 묘하게도 앙드레 말로라는 좌파 지식인과 두터운 우정을 나누고 있었고, 말로를 자신의 내각에 두고 싶어 했다. 앙드레 말로를 문화부 장관에 임명하는 것으로 드골은 자신의 뜻을 실현했고, 1959년 문화부는 그렇게 탄생했다. 이전에는 교육부의 한 부서에 불과하던 문화부 업무를 하나의 독립된 부서로 탄생시키기 위해 말로는 적합한 명분을 찾았다. 바로 '사랑'이었다. 말로는 교육부가 인류가 축척해 낸 '지식'을 후세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면, 문화부의 역할은 인류의 지적인 보물들을 '사랑'할 수 있는 감수성을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교육부는 지식을, 문화부는 사랑을." 그것이 앙드레 말로가 찾아낸, 문화부가 수행해..
about love
p.31 한편, 사랑은 약점에 관한 것, 상대방의 허약함과 슬픔에 감응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그 약점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이 없는 시기에 (즉, 주로 초기에) 그렇다. 연인이 위기에 빠져 낙담하거나 어찌할 줄 모르고 우는 모습을 볼 때 우리는 그들이 여러 가지 장점을 갖고 있지만 격원할 만큼 천하무적은 아니라는 사실에 안심하게 된다. 그들 역시 혼란스러워하고 망연자실하는 순간들이 있다는 깨달음을 통해 우리는 지지자로서의 새 역할을 부여받고, 우리 자신의 부족함을 덜 부끄러워하게 되고 아픈 경험을 공유하면서 그들과 더 가까워지게 된다. Dresden. Germany 2016 p.90 이상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토라진 사람의 분노를 감당해야 하는 특별한 표적이 되었을 때에도 온화하게 웃는 자세를 유지..
정확하게 사랑받고 싶은
정확한 이해를 위해 노력하는 것열심히 사랑하는 것. 닿도록 읽어도 좋은,책 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