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방 레시피
공지사항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
1 선배의 돌지난 아들래미가 가르쳐 주지도 보여주지도 않은 '면봉으로 귀파기'를 흉내내려고 해서 살살 귓가만 닦아줬는데, 잠기운이 올라오고 기분이 좋았던지 그 후로도 자주 면봉을 찾더라고 했다. 결말은 할머니가 안 보는 사이에 제 손으로 귓구멍을 찔러 놀라 울음을 내지르고 병원으로 향하게 된 석연치 않은 이야기였지만, 그 어린 것이 살살 귀를 간지르는 엄마 손의 따스함을 알고 무척이나 좋아하며 까르르 넘어갈 듯 웃는 표정을 떠올리니 참 귀엽다 싶었다. 나도 엄마 무릎을 베고 누워 새우처럼 웅크리고 엄마의 큰 손이 천천히 움직이며 귓밥을 솔솔 긁어주는 것에 기분 좋아하던 기억이 난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꼭 편안하고 고요하게 잠이 들었던 것도 같다. 2 아기도 좋고 어른도 좋은 귀파기, 나도 좋으면 너도 ..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꿈이라... 스물 일곱엔 얼른 과장되는 게 꿈이었고, 스물 세살 땐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되는 게 꿈이었고, 스무살엔 멋진 커리어우먼이 되고 싶었고, 열 아홉엔 대학에 붙기만 해도 소원이 없었지." 영화 의 여주인공 나난의 말이다. 최근에 '회사가기 싫을때' 관련 특집기사 원고를 쓰면서 이상하게 딱 이 대사가 떠올랐다. 직장 상사한테 깨지고, 월요병에 시름 앓아도 우리를 기어코 계속해서 출근하게 만드는 어떤 힘은 결국 자신 안의 꿈이 아니던가. 다시 주먹 불끈 쥐고 점프 높이 올라 멀리 날아오를, 수 있었던 지난 날의 삶의 이유를 떠올리며, 나는 다시 되읊는다. "꿈이라... 스물 다섯엔 행복해지는 게 꿈이었고, 스물 세살 땐 행복해지는 게 꿈이었고, 스무살엔 행복해지고 싶었고, 열 아홉엔 서울만 가도 ..
독서일기
주체할 수 없는 과도한 인풋 상태, 매 순간 기회가 주어지는대로 요점을 메모하지만 정리가 안된다. 빌린책, 산책, 버린책 / 장정일 작년 여름에 읽었던 셔먼 영의 『책은 죽었다』는 책을 '기능적인 책'과 '안티 책'(anti book = 나쁜 책) 그리고 '책'으로 나눈다. 전화번호부나 교과서같이 정보만 가득 담은 책이 기능적인 책이라면, 안티 책은 저자가 누군지도 모르는 유명인사의 자서전이나 영화 개봉에 맞추어 급조된 책과 같이 '책 문화' 파괴에 앞장 선 책들이다. 거론한 기능적인 책과 안티 책은, 종이에 잉크를 묻혀 제본을 한 구텐베르크 이후의 발명품으로서 '인쇄 문화'의 말단에 속한 책이다. 반면 '책'은 인쇄 문화의 산물이긴 하지만, 인쇄 문화보다는 '책 문화'에 속한 책이다. 책 문화란 '숙성..
섬
당신은 정현종 시인의 말을 빌어 인간은 누구나 섬 이라고 말했지만, 『행복의 가설』의 저자 존 던이라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그 자체로 온전한 섬이 아니라 대륙의 한 조각이며 대양의 일부라 했다.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은가, 해저 깊숙히 들어가보면 섬 역시 조각조각 바다 위를 부유하기 이전에 한 땅덩어리 대륙의 부분이다. 지각과 판의 이동, 대륙이동설에 입각해보아도 그렇다. 우리는 모두 각각의 섬이 아니라 혹 섬이라 여겨질 지라도 어느 누구와 한 대륙으로 이웃하며 있었으니, 하나였을 동안 같은 식물이 자라고 같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새들의 천국이었던, 아주 오래 전 대륙의 평화를 꿈꾸며 앞으로 나아가보자. 라는 말을 나는 하고 싶었다. lomo lc-a.
2010' 쉬운 여행, 문경새재를 걷다
휴가 둘째날, 찜질방을 나와서 걷는 발걸음이 유쾌하고나. 영주역으로 향했다. 늦잠자서 부석사는 다음에 다시 오기로 하고, 새로운 곳으로! 그 곳 문경새재로! 사랑을 전하세요 ♬ 영주역입니다~ 오랜만에 듣는 즐거운 멜로디! 문경새재로 갈 수 있는 점촌역으로 발권을 하고, 역 맞은 편에 있는 우동집에서 떡만두국을 먹었다. 기차 안에서는 얼마 전부터 사무실에 앉아 계속 들으며 힘을 받았던 부가킹스의 '여행길'(feat.윤도현)을 실감나게 들었다. 그리고 점촌역 도착! 명예역장 쌍둥이들이 있는 너무 귀여운 역이었다. 역을 나와 물어물어 문경가는 버스 정류소를 찾았다. 점촌역에서 직진하다가 미스터피자를 끼고 돌아 보이는 농협 앞 정류소. 영주역 출발할 때 샀던 주전부리 카라멜을 하나씩 까먹으며 버스 앞에 '새재'..
2010' 쉬운 여행, 영주 무섬마을
갑작스럽게 휴가를 챙겼다. 하루 만에 급하게 일정을 짰는데, 출발하려는 아침부터 삐그덕. 계획대로는 아니지만 어쨌든 집을 나서 동서울터미널로 고고! 첫 목적지는 영주. 원래 예천 회룡포를 가려고 했는데, 회사 분에게 그 곳보다 사람이 적고 고즈넉하니 좋다는 영주 '무섬마을'을 추천받아 덜컥 결정하게 됐다. 작년 입사하기 전에 부석사 여행을 다녀오고 난 뒤 우연찮게도 09'내일로 여행, 오빠야 결혼식, 봉화 청량사 봄나들이 까지... 계속해서 영주를 가게 되는 것 같다. 어쨌든! 버스에서 정신없이 자고 일어났더니 금새 영주 도착. 익숙한 터미널을 나와 하루에 4번 밖에 없는 무섬마을 가는 와현행 버스를 타기 위해 시내버스 정류소로 향했다. 길을 물어물어 가는데 생각보다 멀었다. 500m는 족히 뛰고 걸은 ..